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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다 비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운 찌개에 밥을 말아 먹는 것도, 라면 국물을 끝까지 마시는 것도요. 그런데 이런 습관이 콩팥을 조용히 망가뜨린다는 걸 알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9명 중 1명이 만성 콩팥병을 앓고 있고, 환자 수는 매년 10%씩 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가 느낀 당혹감, 그리고 그 이후에 바꾼 것들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만성 콩팥병, 왜 이렇게 늦게 발견될까요?
피로하고 입맛이 없을 때, 저는 그냥 "요즘 무리했나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증상이 콩팥 기능이 이미 상당히 손상된 후에 나타난다는 사실을요.
만성 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CKD)은 3개월 이상 콩팥 기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질환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지속적'이라는 단어입니다. 한 번 손상된 콩팥 기능은 서서히 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몸이 뚜렷한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피로, 무기력, 식욕 부진, 부종, 야간뇨 같은 증상은 요독이 이미 혈액에 쌓인 뒤에야 나타납니다. 요독이란 콩팥이 제때 거르지 못한 노폐물이 혈액 안에 농축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시점이면 이미 병이 꽤 진행된 상황입니다.
더 무서운 건 생존율 수치입니다. 만성 콩팥병의 5년 생존율은 50~60% 수준인데, 이는 여러 암의 5년 생존율보다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주된 사망 원인은 심뇌혈관 합병증으로, 투석 환자의 경우 심뇌혈관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의 45%에 달합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콩팥이 망가지면 단순히 소변 문제가 아니라 심장과 혈관 전체가 무너지는 연쇄 반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구체 여과율로 보는 콩팥 기능 단계
콩팥 건강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지표가 사구체 여과율(GFR, Glomerular Filtration Rate)입니다. 여기서 사구체란 콩팥 안에 있는 아주 작은 필터망으로, 혈액 속 노폐물과 깨끗한 성분을 걸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정수기로 치면 가장 핵심이 되는 필터 부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정상 사구체 여과율은 약 120이며, 이 숫자가 낮아질수록 콩팥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콩팥병은 사구체 여과율에 따라 단계가 나뉩니다.
- 1~2단계: 콩팥 손상이 있으나 사구체 여과율이 60 이상으로 기능은 비교적 유지됩니다.
- 3단계: 사구체 여과율이 60 아래로 떨어져 본격적인 기능 저하가 시작됩니다.
- 4단계: 30 이하로 떨어지며 피로, 부종 등 증상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5단계(말기): 15 이하가 되면 투석이나 신장 이식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제가 직접 건강검진 결과지를 꺼내 봤더니, 크레아티닌 수치 항목이 있었습니다. 크레아티닌(Creatinine)이란 근육이 에너지를 쓰고 난 뒤 생성되는 노폐물입니다. 건강한 콩팥은 이걸 깔끔하게 걸러내지만, 콩팥 기능이 떨어지면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이 수치는 콩팥 기능을 가늠하는 중요한 혈액 지표가 됩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서도 이 항목에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앞으로 꼭 챙겨봐야 할 숫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염식, 3주면 정말 달라질까요?
짜게 먹는 습관이 콩팥에 나쁘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나쁜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손상을 주는지는 몰랐습니다. 염분을 과하게 섭취하면 체액량이 늘어나고, 그 결과 혈압이 상승하며, 높아진 혈압이 콩팥의 사구체 혈관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손상을 줍니다. 혈관이 약해진 콩팥은 점점 여과 능력을 잃어가고, 이것이 만성 콩팥병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경로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2,000mg 이하입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그런데 한국인의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이 기준의 두 배를 훌쩍 넘습니다. 국물 문화, 찌개 문화가 발달한 우리 식단 특성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저도 국물을 다 마시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게 콩팥에 이렇게 직접적인 부담을 준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조금씩 덜어내고 있습니다.
저염식을 실천할 때 도움이 되는 팁이 있습니다. 짠맛은 음식이 따뜻할 때보다 차가울 때 더 잘 느껴집니다. 그래서 국물이 식은 뒤에 한 입 먹어보면 생각보다 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미각 세포가 덜 짠 맛에 적응하는 데는 최소 3주, 완전히 자리 잡으려면 3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처음 일주일이 제일 힘들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집니다.

당뇨와 콩팥병, 이 둘은 왜 함께 다닐까요?
만성 콩팥병의 원인 중 무려 48%가 당뇨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국내 당뇨 환자 3명 중 1명은 단백뇨 또는 콩팥 기능 장애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당뇨병은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서 혈관 벽을 서서히 손상시키는데, 콩팥의 사구체처럼 아주 가는 모세혈관이 밀집한 곳은 특히 타격이 큽니다. 혈관이 망가지면 사구체 여과 기능이 떨어지고, 이것이 당뇨병성 신증(diabetic nephropathy)으로 이어집니다. 당뇨병성 신증이란 당뇨로 인해 콩팥의 미세혈관이 손상되어 콩팥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합병증을 말합니다.
젊은 나이에 당뇨를 진단받고도 방치했다가 결국 투석을 받게 된 사례를 접했을 때, 솔직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흡연과 단 음료를 즐기는 습관이 건강 악화를 앞당긴다는 설명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에서 본 것은 아니지만, 그 나이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경각심이 달랐습니다.
콩팥 기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칼륨(Potassium) 배출 능력도 함께 떨어집니다. 칼륨이란 심장 박동의 전기 신호와 근육 수축에 관여하는 전해질로, 혈중 칼륨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부정맥이나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뿌리채소류는 칼륨 함량이 높은 편이므로 물에 충분히 담갔다가 조리하는 것이 좋고, 냉동식품이나 즉석식품은 인(Phosphorus) 함량이 높아 뼈 건강과 혈관 건강을 함께 해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콩팥병 초기에는 정말 증상이 없나요?
A. 네, 사구체 여과율이 30 이하로 떨어지는 4단계 이전까지는 뚜렷한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피로나 식욕 부진 같은 증상은 이미 요독이 쌓인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증상이 없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크레아티닌 수치 확인)가 조기 발견의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Q. 건강검진에서 크레아티닌 수치가 살짝 높게 나왔는데 바로 병원에 가야 하나요?
A. 크레아티닌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면 한 번의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신장내과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근육량이나 수분 상태에 따라 일시적으로 수치가 오를 수 있지만, 콩팥 기능 이상의 초기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수치가 높게 나왔다면 다음 검진까지 기다리지 말고 확인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Q. 저염식, 실제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미각 세포가 적응하는 데 최소 3주가 걸리는 만큼, 처음 며칠이 가장 힘듭니다. 이 시기에는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 때 짠맛이 덜 느껴지는 특성을 활용해 국물 온도를 낮추면 실제로 얼마나 짠지 체감하기 쉽습니다. 소금 대신 레몬즙이나 식초로 산미를 살리면 맛의 만족도를 유지하면서 나트륨 섭취를 줄일 수 있습니다.
Q. 당뇨가 없는 젊은 사람도 만성 콩팥병에 걸릴 수 있나요?
A. 당뇨와 고혈압이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자가면역 질환, 요로 감염 반복, 진통제 남용, 고염식·고단백 식단도 콩팥에 부담을 줍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소변에 거품이 많거나 혈뇨가 보이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단백뇨는 사구체에 구멍이 생겼다는 신호로, 조기에 발견할수록 진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
결론
콩팥은 하루 200L의 혈액을 정화하면서도 조용히 일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도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조용한 장기'일수록 더 의식적으로 챙겨야 합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제가 바로 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국물 섭취를 줄이기 시작한 것, 그리고 지난 건강검진 결과지를 꺼내 크레아티닌 수치를 확인한 것입니다.
콩팥 건강은 거창한 계획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국물 한 그릇 덜 마시고,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않고, 소변 색깔이 달라지면 그냥 넘기지 않는 것. 이 작은 습관들이 쌓여야 나중에 투석 없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음 검진에서 크레아티닌 수치와 소변 검사 결과를 꼭 한 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